2022년 읽은 책들 (7월~12월)
7월



<지리산>은 해방전후 혼돈의 시대를 지나는 어린시절 친구 박태영와 이규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두 7권인데 아직 다 못 읽었다... 지금 읽은 데까지는 이규는 후원자의 뜻대로 한국을 떠나 생활하게 되고 박태영은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지만 당의 정책과 방향성에 계속 회의한다. 엘리트 청년들의 자의식이나 소명의식이 사상대립이 심각한 난세에 어떤식으로 형성되는지 볼 수 있어 흥미롭다.
<NL현대사>도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운동권 청년들의 사회운동 흐름을 추적했고, 위의 지리산과 궤를 같이하는 부분이 있는듯. 반제국주의와 통일운동에 투신하던 사람의 극적인 전향이나 대중의 호응이 대단했던 것 같은 당시 학생운동(이종석이 전대협 의장이었을 때 한양대 지원 학생이 늘어 한양대 측에서도 은근히 반겼다는...) 면모와 쇠퇴과정 등을 재미있게 읽었으나 운동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읽어 사실 관계만 파편적으로만 기억나는 것이 문제.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같이 학생운동을 개인적으로 풀어낸 책을 추가로 읽어줘야 할 듯 하다. 운동권의 꿈과 좌절, 그것의 토대였던 이상이라던가 사상(그것을 포괄하는 집단주의!)이 연결되고 얽히는게 이해 안되는 부분이 많음.
8월

가정 스릴러라는 이름이 붙은 장르 소설로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부부사이 문제로 보이던 일이었으나 주인공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된 어떤 사실로 인해 모든게 발생했다는 이야기. (스포!) 인종문제를 우회하는 척하면서 결국 정공법으로 보여주고야 마는 작가의 내공에 감탄이 나오기도 하지만 시대의 한계인지 몇 인물들의 묘사에서 또 은근슬쩍 인종적 편견을 강화하기도.
9월


<당신의 말이 역사가 되도록>은 부제처럼 구술을 어떻게 '듣고' 기록할 것인지, 활동가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술채록의 노하우를 나눴다. 무엇보다 기록하는 사람과 구술하는 사람간 관계, 구술채록이 양쪽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활동이라는 점이 잘 설명되어 있다. 탐욕스럽게 약탈적으로 말을 수집하거나 목격했던, 인터뷰이와 라포 형성에 성공했거나 실패했던 경험을 반추하게 만든... 개인적으로 제목이 조금 거대하고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긴하지만 기록하는 게 정치적인 행위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지은 제목인듯.
10월

찬탁 반탁 논쟁, 분단원인, 햇볕정책, 뉴라이트 등 한국 현대사 주요 쟁점에 대해 오고간 논쟁을 정리해놨다. 상당수 현재진행형인 논쟁이 많아 (방금 생각난 것은 한일 국교정상화 청구권 자금 논쟁 같은, 위안부나 최근 강제동원 보상문제 등에 계속 물린다) 다시한번 천천히 탐독할 가치가 있다.
11월

소설, 사진, 영화, 만화 등 다양한 매체의 특성이 인지에 어떻게 다르게 작용하여 사람들이 과거와 만나는 일에 영향을 주는가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역사적 사건과 전달자, 수용자가 맺는 관계에 따라 무수히 많은 역사의 판본이 나올 수 밖에 없는데, 요는 역사적 책임의식이 어떻게 형성되는가 하는 문제이고 과거와 건강한(?)관계 맺기같은 발전적으로 역사와 만나기 위한 방법을 고찰하고자 했던 좋은 책이었다.
12월



<우리 안의 친일> 도 위의 우리안의 과거와 일정부분 궤를 같이 하는 책이라 생각.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밝히고 있듯 '공유재로서의 역사', 역사가 논쟁의 장이 자체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찬반이 아닌 성찰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식민지근대화론, 팽창주의, 실력주의, 과거사 청산 등 일제강점시기 배태되어 우리 사회에 습속화되고 지금까지 논쟁을 유발하고 있는 주제를 다룬다. 쉽지 않은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지만 200페이지 정도의 많지 않은 분량으로 식민지근대화론이 얼마나 일제강점기를 지나던 사람들의 삶에 대한 성찰이 없다시피하고 얇팍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걸 확실하게 이해시킨다.
<체공녀 강주룡>은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 노동쟁의를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신인작가와 중견작가의 소설을 연달아 읽게 되었는데 둘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읽었다. 전자는 결말까지 달려가는 여정에서 한 문제적(?) 인물의 기질과 개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후자는 이승과 저승 사이 어딘가에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 제주 4.3이라는 입에 올릴 수도 없이 비극적인 사건 속으로 독자를 밀어넣는다. 두 소설을 읽는 시간이 너무 황홀해서 2022년 최고의 순간중 하나로 손꼽아도 될듯. 2023년에도 좋은 소설 많이 읽어야지.